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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를 배우자

가장 어려운 10대 피아노곡


1.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선정 기준의 범위를 고전파 이전의 건반악기를 위한 작품까지 넓힌다면, 그 첫 번째 작품은 단연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다. 바흐가 신세를 진 적이 있는 카이저링크 백작의 고용인 골드베르크의 연주를 위해 씌어진 이 작품은 주제와 30개의 변주로 이루어져 있으며, 파사칼리아와 샤콘, 캐논 기법이 혼합된 성격변주곡이다. 지극히 계산된 대위 기법이 쓰였으며, 2단 건반을 위해 만들어진 곡이기 때문에 현대 피아노로 연주하기가 무척 난해한데, 거기에 반복 표시를 모두 따르면 무려 7-80분에 이르는 방대한 연주 시간으로 인해 연주자의 강한 체력과 암보력을 요구하는 대곡이다. 대칭형으로 만들어진 변주들과 곡의 맨 마지막에 다시 등장하는 주제로 인해 인간의 윤회사상 등과 비교하여 해석하려는 연주자들도 있다. 글렌 굴드의 센세이셔널한 연주로 20세기 후반 바흐 연주의 새로운 붐을 일으킨 아이콘이 되었다.


2. 베토벤 ‘함머클라비어 소나타’


피아노 앞에서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베토벤의 OP.101 이후의 피아노 소나타 다섯 곡 (후기의 마지막 소나타들)은 바흐의 평균율, 쇼팽의 에튀드 등과 함께 평생 지고 가야 할 십자가 같은 작품들이다. 다섯 곡 모두 난공불락의 어려움을 지니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작품 106의 ‘함머클라비어’ 소나타는 한마디로 ‘괴물’이다. 1819년에 완성된 이 곡은 당시 베토벤이 새롭게 선물받은 함머클라비어 (이탈리아어의 피아노포르테와 같은 뜻으로, 베토벤은 피아노가 독일인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믿었다)의 성능을 시험해보려는 의도로 씌어진 바, 그 규모와 스케일 면에서 당시까지 그 어떤 작품도 도달하지 못했던 경지에 다다르고 있다. 피아니스틱한 효과와 장대한 구성이 어우러진 1악장, 유머러스함과 변덕스러움이 공존하는 스케르초의 2악장, 우주적인 황홀함과 인간적인 비탄이 느껴지는 3악장, 그리고 서주와 여덟 개의 푸가가 등장하는 4악장에 이르기까지 피아니스트에게 주어지는 과제는 참으로 크고 해결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하겠다. 최고의 대가들도 그야말로 살인적인 어려움의 ‘함머클라비어’를 요리하는데 곤란함을 느끼기는 마찬가지여서 무대 위에서 예기치 못한 페이스 난조를 보이는 일도 종종 있다.


3. 베토벤 ‘디아벨리’ 변주곡


‘함머클라비어’ 보다 4년 후인 1823년 베토벤은 디아벨리라고 하는 출판업자의 보잘것없는 왈츠 멜로디를 주제로 하여 33개의 거대한 변주곡을 작곡하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디아벨리’ 변주곡이다. 원래 디아벨리의 계획은 당시 명성을 날리던 작곡가들에게 공통의 주제를 주어 한 개씩의 변주곡을 부탁하려고 했던 것이었으나, 베토벤은 이를 거절하고 독자적인 자신만의 변주곡을 계획하기에 이른다. 원제에 ‘variation' (변주) 대신 ’verandung' (변화 혹은 변질의 뜻) 이란 단어가 붙어있는 것으로 보아 베토벤은 애초부터 흥미롭지 못한 주제에 신세질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듯 하다. 1시간을 훌쩍 뛰어넘는 연주시간 동안 베토벤다운 큰 스케일의 표현과 극단적인 다이내믹, 다성부적인 처리와 변화무쌍한 기교적 패시지 등 연주자의 피와 땀을 요구하는 ‘디아벨리’ 는 수많은 피아니스트들이 음반으로 나름대로의 해석을 내놓았지만 아직도 미답의 경지가 많은 문제작이기도 하다.


4. 쇼팽 피아노 소나타 2번 b flat 단조


한평생 피아노에 살다 피아노와 함께 짧은 생애를 마친 프레데릭 쇼팽의 작품은 그것을 연주하는 후대의 모든 이들을 아름답고 환상적인 시상 속으로 안내하지만, 일견 자유롭고 로맨틱한 무드 속에서 들려오는 유려한 멜로디 속에서 발견되는 숨은 엄격함과 의외로 단단하고 정리돼 있는 구성의 묘는 우리들을 끝없는 고민 속에 빠트리기도 한다. 그의 피아노 소나타 2번 b flat minor는 피아노 전공자라면 이미 틴 에이져 시절 만나게 되는 필수곡이지만, 청소년기의 감성만으로는 완성이 불가능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슈만은 이 걸작을 가리켜 ‘소나타라는 테두리에 묶을 수 없는 네 개의 작품을 억지로 밀어넣었다’ 는 역설적인 극찬을 보낸 바 있는데, 과연 이 네 개의 악장은 의문점과 물음표로 가득차 있다. 불안하고 충동적인 악상과 달콤함이 강한 모순을 느끼게 하는 1악장, 절망감과 남성적인 힘이 부딪히고 있는 2악장, 너무나도 유명한 장송행진곡과 녹턴풍의 기도가 인상적인 3악장, 중심이 없이 흔들리는 바람소리가 상한 영혼의 흐느낌을 연상시키는 4악장 등, 슈만의 말대로 이 네 개의 독자적인 악곡의 유기적인 통일성을 찾고 그 균형을 맞춘다는 것은 그 피아니스트의 일생을 걸어야 할 과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5. 쇼팽의 4곡의 발라드


쇼팽의 다양한 창작세계를 각 시대별로 대표하고 있다고 할 네 곡의 발라드는, 지극히 추상적으로 표현되어야 할 피아노 작품의 양면이라고 할 수 있는 서사성과 서정성 모두를 충족시켜야하는 난점을 안고 있다. 이 작품들 역시 학생들의 필수 레퍼토리이지만, 해석의 있어서의 포인트와 그것이 지향하는 결론을 어느 길에서 찾느냐에 따라 연주의 결과는 180도로 달라지게 된다. 폴란드의 시인 미키에비츠에게서 그 모티브를 따왔다고는 하나 지극히 순음악적으로 작곡된 이 걸작들에 섣불리 구체적인 심상을 제공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렇다고 쇼팽의 작품치고는 대규모의, 그것도 빈틈없이 꽉 찬 짜임새 안에 들어있는 ‘발라드’를 적당히 즉흥적인 기분에 맡겨 처리하기에는 바닥에 깔린 무언의 메시지가 너무도 뚜렷하며, 고밀도의 음악적 표현을 완성하기 위한 기교적인 과제도 만만치 않다. 학생들의 시험이나 입시에 자주 등장하는 이 곡들이 성인 피아니스트들의 무대에 뜸하게 올려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6. 브람스 ‘파가니니 변주곡’


피아노 문헌에 등장하는 여러 걸작 변주곡들의 주제로 가장 자주 등장하는 곡은 무엇보다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솔로를 위한 카프리스 24번이다. 원곡 자체가 변주곡으로 쓰인 데다, 정열적이면서도 뭔가 오묘한 느낌을 풍기는 멜로디가 후대의 작곡가들에게 다양한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고 하겠다. 두 권으로 된 브람스 작곡의 ‘파가니니 변주곡’ 이 발표된 것은 1863년으로, 역시 그의 변주곡 중 걸작으로 알려져 있는 ‘헨델 변주곡’ 보다 2년 뒤이다. ‘파가니니 변주곡’ 은 브람스의 스타일로는 드물게 화려한 피아노의 기교를 전면에 내세운 성격으로 돼 있는데, 난해한 싱코페이션들과 3도, 6도, 옥타브 연습, 그리고 건반 양쪽 모두를 충분히 활용한 심한 도약 등으로 마치 에튀드의 연속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연주자의 노동에 가까운 연습과 연주 시 강한 체력이 요구됨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효과적으로 연주됐을 때 얻을 수 있는 비르투오소 적인 브라부라 (열광)의 요소도 상당하다. 두 곡 모두 14개씩의 변주로 되어 있으며, 자신의 편의에 따라 양쪽에서 변주들을 발췌해 연주하는 경우도 많다.


7. 발라키레프의 ‘이슬라메이’


19세기 후반 활동했던 피아니스트 한스 폰 뷜로가 ‘모든 피아노 곡 중 가장 어려운 곡’ 이라고 평한 작품은 다름아닌 러시아의 밀리 발라키레프 작곡의 ‘이슬라메이’ 이다. ‘이슬라메이’ 는 카프카즈 산맥 북쪽에서 전해 내려오는 민속 무곡의 이름이며, 발라키레프는 이 무곡을 바탕으로 리스트 풍의 기교적 패시지가 가득한 비르투오소 피스를 만들었다. 연주시간은 10분 정도로 비교적 짧은 편이지만, 손가락을 ‘꼬이게’ 만드는 3도 진행들과 강렬한 옥타브, 연속되는 포르티시모의 연속과 쉴 새 없는 도약 등이 연주자의 한계를 시험하게 한다. 중간부에는 ‘동양풍의 환상곡’ 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중앙 아시아 풍의 엑조틱한 멜로디가 흐른다. 전체적으로 무척 과시적이고 화려한 색채감과 피아니스틱한 효과를 노릴 수 있기 때문에 국제 콩쿠르에서 자주 선택되는 곡이기도 하다.

 


8.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 중 ‘스카르보’


프랑스의 근현대 작곡가들 중 이른바 표현 수단으로서의 테크닉 사용에 있어 리스트의 영향이 가장 많이 느껴지는 사람은 라벨이다. 하지만 그 피아니즘에 있어서 다분히 고전적이 깔끔함과 절제를 미덕으로 삼았던 라벨의 피아노 곡 중 기교적으로나 음악적으로 (표현의 방법 면에서) 최고봉은 세 곡으로 된 ‘밤의 가스파르’ 이며, 그 중에도 마지막 곡인 ‘스카르보’ 는 가히 프랑스 피아니즘의 최고 걸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카르보는 시인 베르트랑의 시 ‘밤의 가스파르’ 에 등장하는 장난꾸러기 요정의 이름이다. 이 요정은 사람을 골탕먹이며 여러 가지 혼란에 빠트리는데, 원작인 시와 라벨의 작품 모두 짙은 위트와 풍자가 숨어있어 해석하는 이에 따라 갖가지 스타일의 연주가 나오게 마련이다. 물론 이러한 본질로 접근하는데 열쇠가 되는 기교적인 난제들이 작품의 요소요소에 산재해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강한 손목 힘과 어깨의 유연함 움직임, 그리고 야무진 스타카토의 숙달 등이 지상 과제이다.

 


9. 스크랴빈의 에튀드 op.42-5


발표 당시 ‘연주 불가능’ 이란 평을 달고 이 세상에 나왔던 쇼팽의 에튀드나, ‘리스트만이 연주할 수 있다’ 던 초절기교 에튀드등도, 세기가 두 번 바뀐 지금은 기교적으로 어느 정도 정복이 가능해졌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아직도 난공불락의 에튀드는 얼마든지 존재하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스크랴빈의 에튀드 OP.42-5 이다. c sharp minor의 조성을 갖고 있는 이 연습곡은 템포로 보면 모데라토(보통 빠르기) 정도로 그다지 어렵지 않은 듯 하나, 끊임없이 이어지는 16분 음표들의 다성부적 진행과 불규칙한 도약, 까다로운 운지법 등이 피아니스트를 한시도 마음 편하게 해주지 않는 고통스러운 곡이다. 난이도에 걸맞게 앞머리의 지시말은 affanato(숨을 헐떡이며) 이며, 당시 스크랴빈의 분열적 작품세계까 잘 드러나 있다. 전체적으로는 쇼팽 풍의 멜랑콜릭한 멜로디와 리스트 풍의 호쾌한 피아니즘이 적절히 드러나있다.


10. 라흐마니노프의 멘델스존의 ‘한여름밤의 꿈’ 중 스케르초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는 피아노를 포함한 각 분야에서 최고의 비르투오소가 자신의 능력을 뽐내던 시기였으며, 다양한 장르의 곡을 기교적인 피아노 곡으로 편곡하는 것이 성행하던 때이기도 했다. 부조니, 고도프스키의 작품들과 함께 현재도 많은 사랑을 받는 편곡들은 라흐마니노프의 작품들이다. 그 중 최고의 난곡으로 여겨지는 작품은 멘델스존의 관현악곡 ‘한 여름밤의 꿈’ 중 스케르초를 피아노 솔로 버전으로 만든 피스이다. 이 곡은 원곡에서 풍겨지는 가벼움과 환상곡 풍의 자유로움을 그대로 지니면서 라흐마니노프 특유의 대륙적이고 거대한 율동성이 동시에 느껴지는 효과적인 편곡으로 만들어져있다. 처음에는 가볍게 시작되어 점차 겹쳐져 가는 화음 진행과 왼손의 도약, 멜로디의 효과적인 노래 등도 어렵지만 무엇보다 이 곡의 난점은 컴퓨터처럼 정확히 그리고 절도있게 표현돼야 하는 박자와 리듬이다. 이는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아서, 피아니스트가 조금만 오바하면 금새 그 균형이 깨져버리고 만다. 연습을 하면 할수록 그 교묘한 리듬체계가 수수께끼 같이 느껴지는 작품인데, 라흐마니노프 자신도 이 곡의 연주시에 단 한 번도 만족한 적이 없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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