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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등등

베토벤 바이러스

 

 

 

요즘 <베토벤 바이러스>라는 드라마에 말 그대로 푹 빠지고 말았다.

가끔은 스스로 한심하게 느껴질 정도로 비정상적인 상태다! 

그런데 왜 이렇게 점점 갈수록 더 빠져들게 되는 걸까?

아무래도 드라마 소재의 이채로움과 그 내용의 흥미진진함, 

그리고 무엇보다도 김명민에 의해 그 매력을 더하고 있는

강마에라는 독특한 캐릭터 덕분이기는 할 것이다.  

게다가, 전체적 주제와 맞물려 진행되어지고 있는 러브라인이 본격화 되면서

이렇게나 더욱 몰입하게 되어버린 건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자꾸 스스로 다독이게 된다.

이 드라마는 어차피 멜로드라마가 아니잖아?! 이러면서,

그들에게 지나치게 시선을 주지 말자고 다짐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겉으로는 드라마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다 보면

나름 납득할만한 마무리를 보게 되지 않겠냐고 말은 하는데,

그럼에도 내심 그들 사랑의 향방이 몹시 궁금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나 뿐만은 아닌 듯 하다. 

때로는 작가들의 전작이나 감독의 전작을 예로 들어가며,

벌써부터 그 마지막을 추측들 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 감독과 작가들의 전작을 무시 못 하는 게,

대체로 드라마에는 그 감독과 작가의 기본적인 세계관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이는 사랑을 그려나가는 관점에서도 마찬가지라서

전작들을 참고로 하다 보면 때론 그 결말을 점칠 수 있기도 하다.



그래서 문득 예전에 봤던 작가들의 전작

<태릉선수촌>과 <오버 더 레인보우>를 떠올려 봤다.

사실, 정확히 기억하고 있지는 못하다.

<태릉선수촌>은 끊임없는 도전과 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청춘의 이야기이니만큼,

그들 사랑에 있어서도 그러한 의미를 투영시키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즉, 여기서의 사랑은 그들 일상의 삶처럼 일종의 경쟁이기도 하기에   

그 결과가 패자가 무안해질 정도로 적나라하게 까발려지는가 하면,

패자 스스로 먼저 일어나 뒤돌아 설 수 밖에 없도록 묘사되고 있어  

보면서 은근히 마음 불편했던 기억이 난다.



한편, <오버 더 레인보우>는 후반뿐이 보지 못했기에

더욱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지라,

예전에 마지막 회를 보고선 정리해둔 감상을 찾아봤다.

당시, 개인적으로는 그 드라마 속 삼각관계 대립을 

이질감에 의한 설렘 대 동질감에 의한 공감으로 파악했던 것 같다.

결국 선택은 후자로 마무리 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보다도 새삼 눈길을 끄는 당시의 내 관점은, 

그 무렵 읽고 있던 <신화로 읽는 여성성>이라는 책에서 언급됐었던

사랑에 빠지는 것과 사랑하는 것의 차별화를

그 드라마 속 삼각관계에 대입시켜 생각해본 부분이었다.  



먼저, 이 두 가지의 근본적인 차이부터 살펴 보자면,

가슴 뛰고 두근거리는 감정은 말 그대로 사랑에 풍덩 빠진 상태다.

사랑의 격정 및 열정적 측면을 대변하지만,

사랑을 이어가기 보다는 사랑에 빠진 그 자체일 따름이다.

그래서 자신이 사랑하는 이를 신격화 또는 우상시 하기도 하나,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이해하는 사랑의 지속성과는 엄연히 다르다.

이와 달리, 사랑에 빠진 게 아니라 사랑을 한다는 의미는,

상대방에 대한 환상을 품지 않은 상태에서 그 자체로 이해해가는 과정인 것이다.

그런데 바로 <오버 더 레인보우>는 이십대에 더 잘 어울릴 법한

사랑의 열정적인 측면보다는 오히려 이해와 공감에 의한 선택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그들은 사랑에 빠진 것이 아니라 사랑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대입은 강마에와 두루미의 사랑에도

충분히 적용되어질 수 있다고 본다.

얼핏 보면, 마냥 설레고 두근거려 하는 두루미의 모습은

마치 사랑에 ‘빠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두루미에겐 강마에에 대한 그 어떠한 환상도 없다.

오히려 강마에의 진면목을 알게 되면서 그에 대한 마음도 커져갔던 것이다.

8회에서 그의 무음(無音)의 손짓에서 그녀가 음악을 읽어내고 있는 장면을 보노라면,

두루미는 그가 머릿속으로 펼쳐내고 있던 음악 그 자체보다도

강마에라는 인간의 본질을 읽어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쓸쓸하고 슬픈, 강하지만 외로워 보이는, 멋있기도 하면서 은근히 귀여운...

그래서 안쓰러워 안아주고 싶어지는 두루미의 마음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리고 9회에서 단원들이 반기를 들었을 때,

하이든과 김갑용을 향해 강마에의 참모습을 역설하는 장면에서도

두루미야말로 그 누구보다도 강마에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즉, 두루미는 7회에서 강마에가 추측하듯 내뱉었던 말처럼

가진 자에 대한 동경 등에서 비롯된 엘렉트라 콤플렉스 따위가 아니라,

오히려 강마에가 가지지 못한 자라는 걸 알게 되면 될수록

더욱 그 마음이 흠모에서 사랑으로 발전해갔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 일시적으로 사랑에 ‘빠진’ 상태가 아니라,

깊은 이해를 동반한 사랑을 ‘하는’ 상황이라 말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처럼 사랑에 빠진 게 아닌,

사랑을 하는 상황은 강마에 또한 마찬가지다.  

그 역시 두루미에 대해 단 한 치의 환상도 지니고 있지 않다.

이리저리 설치다가 지뢰밭 터뜨리기 일쑤인 두루미의 성향을

직접 대놓고 말할 정도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항상 밝은 웃음을 내보이곤 하지만,

그만큼 스스로의 감정을 억누르고 있음도 파악했기에

공원 호숫가에서 그녀로부터 감정적 폭발을 이끌어내기도 했던 것이다.



극이 진행될수록 두루미의 눈물이 많아지고 있는 데에는

강마에를 향한 사랑의 아픔 때문이기도 하나,

그녀로 하여금 호수에 뛰어들도록 만든 그 순간부터

감정의 외부 표출에 좀 더 솔직할 수 있도록

강마에가 그녀를 변화시켰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즉, 강마에 역시 두루미를 누구보다도 깊이 이해한 것이지,

일시적으로 젊은 여인에 대한 열정에 휘말린 것이 아닌 것이다.

 

       

 

 

 

간접적이고도 우회적인 표출, 그러나 이로 인한 자극



그렇다면, 이들 간에 오가는 사랑의 표출 형태는 과연 어떠할까?

서로 이해와 교감에서부터 서서히 비롯된 감정이라 하나,

강마에와 사제 관계로까지 발전한 강건우로 인해

두 사람 모두 직접적으로 드러내놓고 마음을 내보일 수는 없다.

그러다 보니, 둘 다 간접적인 방식으로 표출하곤 하는 것이다.

앞으로 청각을 상실하게 될 두루미에게 장난치는 척 하면서

독순술의 유용함을 간접적으로 암시해주는가 하면,

놀리듯 유통기한 지난 사탕인 양 속이며 풍선껌을 선물하고 있지만

그녀의 희망과 기운을 북돋기 위한 마음이 담겨져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합창 교향곡 공연을 수락하게 된 그 이면에서도,

청각을 잃기 전에 단 한 번이라도 무대에 서고픈 두루미의 열망에 대해

강마에의 마음이 대답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가 하면, 며칠 간 보이지 않았던 두루미가 내심 염려됐는지,

서류에 사인 받으러 온 그녀의 재촉에 응하지 않고

이를 빌미로 오히려 옆에 붙잡아 두는 모습도 매우 의미심장하다.  

그러면서 던지는 첫 마디가, 아팠냐는 질문이다.

이 질문 하나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두루미를 걱정하고

신경 쓰고 있는지 충분히 짐작해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마음의 간접적인 표출은 두루미에게도 해당되고 있다.

단원들이 반기를 들었을 때 가장 동분서주했던 이도 그녀였으며,

심지어 평소 공경하던 김갑용에게까지 질타를 아끼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모욕감마저 느끼게 하는 강마에의 지독한 독설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 독설의 핵심 단어인 ‘천박함’을 이용해

마음 심란한 그에게 웃음을 안겨주기까지 하고 있다.

이어, 단원들에게 백기를 들겠다는 강마에의 결정을 듣고는

순간 그의 심경을 대신하기라도 하듯 울음을 터뜨리는 것이다. 



그러다 결국 사태는 무난히 해결됐지만,

그 과정에서 단원들과 오간 독설들로 다소 앙금이 남았을 수도 있을 상황을,

그의 생일파티를 마련함으로써 일소에 해소시키고 화합으로 이끌어내기도 한다.

합창 교향곡 공연을 앞두고 팔에 부상을 입었을 때도

공연 와중에 급히 밖으로 나가 파스를 사갖고 오기도 하고 말이다.

그렇지만, 이 모든 걸 행하는데 있어

결코 자기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오히려 건우 뒤로 숨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간접적 방식으로 마음을 표하다 보니,

때로는 자신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상대를 자극함으로써 

전혀 예상치 못한 발언을 유도해내기도 한다.

8회 초반, 일개 단원이 물에 빠지건 말건 왜 신경 쓰냐며

자살 방조죄니 레퀴엠 선곡이니 하며 강마에를 놀린 결과,

그로부터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다는 대사를 얻어낸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은 9회 마지막에 이르면 반전되고 있다.

이번에는 강마에가 두루미를 자극한다.

첫 마디는 아팠냐는 마음속 걱정을 무심한 듯 툭 내던져 보였지만,

이후 이어지는 말들은 하나같이 두루미를 자극하는 내용들이다.

바람이 난거냐, 건우와 잘해봐라 등등.

심지어는 오직 그만을 위해 스스로 망가지는 것도 불사한

과자 한입에 넣기 행동까지 들먹이며 건우에게도 보여 줬냐고 묻는 것이다.

이러할지니, 바로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강마에를 피해 다니던 두루미였건만,

갑작스레 이쁜 건우가 아닌 미운 건우를 좋아하는 것 같다는 말이 나올 수 밖에.  

즉, 평소 서로 간접적으로 표출하며 자제하는 만큼,

오히려 어느 순간 상대의 자극에 예상치도 못한 반격을 하는 그들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당초 9회 예고편에선 보여줬던 

강마에가 두루미의 턱을 살며시 들어 올리는 장면이,

막상 본방에서 삭제되고 만 점이 매우 아쉽게 느껴지곤 한다.

물론 강마에의 성격상 이처럼 좀 더 드러나는 표현을 하기엔

빠르다 싶어 편집한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두루미의 입장에서도 생각해 보면,

이러한 강마에의 순간적인 자극으로 인해

더욱 마음을 접을 수 없어 하며 내적 갈등을 거듭하다가, 

그 뒤의 순간적인 고백으로 이어지게끔 해주는 역할의 장면일 수도 있다.



더구나, ‘이젠 울지 마’라는 말만 그녀에게 전하면 되는 것이었음에도,

강마에는 왜 고개 푹 숙이고 있던 두루미의 얼굴을

자신의 시선과 맞추도록 굳이 들어 올렸던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그녀의 귀만이 아니라 ‘눈’에도

이 말을 보여주고 싶었서가 아니었을까...

아니, 앞으로의 두루미는 이 말을 귀로써가 아니라,

그의 입술 모양으로써 더욱 생생하게 기억해야 하기 때문인 것이다.   



이런 그들과 달리, 강건우는 확실히 직진하는 타입이다.

정명환은 강건우의 이러한 성향을 가리켜 강마에와 똑 닮았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음악적 추구는 그러할지 몰라도 감정의 외적 표출에 있어선

강마에는 건우에 비해 상당히 우회적인 편이다.

어쩌면, 더 이상 건우와 같은 청춘이 아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당당히 손을 잡고 닭살이 돋을 만큼 노골적으로 고백하는 건우와는 다르게,

감정의 농도가 짙어질수록 독설의 강도도 더욱 세어지는 반어법 스타일이

현재 강마에의 감정 표출 방식인 것이다.   

즉, 이러한 감정적 측면에서도 감춤과 드러냄이라는

강마에와 강건우의 상이한 표출 방식이 드러난다 하겠다. 

 

 

 

 

 

물에 의해 자각되어지는 감정의 미묘한 기류와 그 발전



그렇지만, 내적 본질에 있어선 어지간히 닮은 두 사람이니만큼,

동시에 한 여자를 좋아하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이 각각 두루미와의 사이에서

막 피어나기 시작하는 감정의 미묘한 기류를 더욱 뚜렷이 자각하고,

한층 발전하게 되는 계기가 공통적으로 ‘물’에 의해서라는 점이 흥미롭다.

2회에서 두루미는 강마에의 명령으로 이런저런 잡일을 하던 건우에게서

자신에 대한 호감을 읽어 내고는 마음 들떠 물장난을 치다가,

그만 빨래통에 자빠지고 만다. 

그런 그녀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켜 세우던 도중에 발생한 접촉에,

건우만이 아니라 두루미 역시 감정의 미묘한 기운을 느끼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의 의미를 띠고 있는 장면이 8회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강마에의 독설에 자극을 받아 스스로 호수에 풍덩 뛰어든 두루미.

본래 이는 두루미의 현실 직면을 촉구한 강마에의 자극법이기도 했으나,

물속에서 절감한 외로움에 대한 두루미의 토로는

두 사람을 한층 더 정서적 공감대로 연결시켜 주게 된다.

이어, 건우 집에서 서로 간에 오가는 농담과 진담이 섞인 어색한 대화 역시, 

자신들이 지휘자와 일개 단원으로서만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이기도 함을 그들 스스로 연출해낸 것이라 하겠다.

 

   

 

 

 

강마에의 내, 외적 면모를 각기 담당하고 있는 강건우와 두루미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강건우와 두루미는

강마에의 내, 외적 면모를 제각기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특성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장면은

8회 김갑용의 오케스트라 복귀 및 9회 단원들의 반기 사태에서다.

먼저 8회 장면부터 살펴보면, 두루미가 먼저 강마에를 찾아가서

그의 선한 내면에 대한 강력한 믿음을 드러내는 걸로 시작한다.

곧 이어 이번에는 건우가 강마에를 깁갑용이 연주하고 있는 거리로 끌고 가서

그의 냉혹하다시피 한 외적 면모에 대해 열렬한 지지를 보내는 척 한다.

즉, 그 둘이 이처럼 강마에의 내외적 면모를 사전에 이미 제압해 놓았기에,

한결 수월하게 김갑용의 오케스트라 복귀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9회에서 단원들의 반기가 일어났을 때도 마찬가지다.

이번에는 강건우의 역할이 먼저다.

그 특유의 직선적인 방식으로

한껏 일그러진 강마에의 외적 자긍심을 일으켜 세워 놓는 것이다.

그 다음은 두루미 차례다.

외적 자긍심의 회복에도 불구하고

내적으로는 여전히 흔들리며 자괴감에 빠져 있는 강마에.

그런 강마에의 마음 속 울음을 그녀가 대신 울어줌으로써

결국 그의 가장 중요한 본질인 내적 신념을 부활시키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의 이와 같은 강마에를 향한 공조는

10회 합창 교향곡 공연에서 다시금 빛을 발하고 있다.

건우는 김갑용의 정신력을 자극하는 동시에 합창단장을 설득해냄으로써

공연의 외부적 위기를 극복해내고 있다.

한편, 두루미는 강마에의 팔 상태가 자못 심각하다는 사실을 눈치 채고는

건우를 통해 힘들게 사온 파스를 전해준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팔의 통증을 조금이나마 가라앉혀 주는

파스 자체가 아니라 거기에 담겨진 그 마음이다.

비록 단원들의 투지를 한껏 드높이는 발언을 하고는 있지만,

스스로는 절망스럽기 그지없을 강마에의 마음을 위로하며

그 의지를 북돋워주고 있는 두루미 마음의 표현인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두 사람의 강마에에 대한 역할 분담은

사실 드라마 초반에서도 이미 조금씩 암시되어져 왔었다.    

짜증난다는 듯 내뱉곤 하던 강건우의 직선적인 표현에 자극받아,

강마에의 눈썹이 일그러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반면, 두루미는 좀 더 그 내면을 깊이 건드려오는 발언을 하곤 했었다.

그를 살리에르에 비유한다던가,

그의 실력보다는 건우의 인품이 자신들 프로젝트 오케스트라에

더욱 최적의 지휘자임을 고집하는 것으로써 말이다.

그럴 때마다 눈썹이 아닌 눈빛이 순간 흔들리곤 했던 강마에였다.



하지만, 이렇게 극중 설정에서 두루미가 강마에의 내면을 담당하고 있기에,

두 사람의 교감과 이해가 더욱 높아져온 것만은 아니라고 본다.

건우보다도 두루미가 더욱 강마에의 내면과 교차를 이루고 있는 것은,

그 내면의 감추기가 그만큼 닮아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상처 입을까 두려워 외면에 가시를 세우는 강마에나

자신보다 상대를 더 생각하느라 때론 스스로를 억누르는 두루미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마음이 여리다고 곧잘 표현되어지는 건우야말로

자신의 내면을 솔직하게 내보일 정도로 강한 편이다.  

 

 

즉, 두루미가 자신의 내면을 웃음으로 커튼을 치고 있다면,

강마에는 독설로써 커튼을 치는 것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누구보다도 그 마음들은 외로운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외로움에의 공감과 공유가

이 둘을 교감에 의한 이해로 더욱 나아가게 해준 건 아닌지 추측해 보게 된다.

그래서 내심 바라게 되는 것이다.

일시적인 환상이나 열정에 의한 순간적 사랑이 아니라,

이해와 공감에 의해 서서히 그 마음을 더해가는 이들의 사랑이

부디 행복한 마무리로 이어지기를... 

캬  베토벤 바이러스를 본방으로 꼬박꼬박 보는데 정말 재밌더군요. 이런 장르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이레요.신선하고 재밌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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